그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.
이제서야 고백하건데, 이 날 올레는 내가 제주에 와서 처음으로 걸어본 올레다. 제주에 정착할 당시엔 올레라는게 없었을때고, 이후에 올레가 점점 인기를 끌때엔 애기가 생겨 갈 수가 없었다.
중간중간 코스 일부를 스치듯 걸어다닌 적은 있어도(그것도 애기를 안고) 온전히 올레를 완주한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.
쉽진 않았다.
16km를 걸어서 완주하는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. 게다가 그 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.
아내와 애기가 없는 주말은 신이 주신 기회. 이 황금 같은 주말을 비 때문에 포기할 순 없다. 모든 일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. 조금 더 힘든 일은 조금 더 마음을 다 잡으면 충분히 가능하다.
그렇게 버스에 몸을 실었다.

엄밀히 따지자면 원래 코스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다.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서귀포 시외버스 정류장이었고 여기서부터 무작정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.

역시나 7코스는 아름다웠다.
억수같은 비도 7코스의 아름다움을 상쇄시키진 못했다. 아니, 오히려 아름다움을 더 했다고 표현하는게 맞을려나. 세상을 다 씻어내듯 내리는 비는 해무와 함께 영롱함을 자아냈다.
외돌개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중간중간 관광객들도 많았다.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짙은 화장을 한채 한 손에는 우산을,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질퍽한 흙 길을 위태롭게 걸어다니던 중국인 관광객이 눈에 띈다. 아니나 다를까 이내 뭐라뭐라 화를 내며 버스로 돌아가버린다.

여기서부턴 혼자다.
더 이상 관광객도 없고 올레꾼 조차 보이지 않는다. 물이 넘쳐 끊어진 길도 있고, 질퍽한 진흙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. 7코스 초입의 다소 인공적이었던 아름다움은 중반에 접어들면서 거친 자연미로 변한다.

염소만 다니던 길을 삽 한자루로 사람이 다닐 수 있게 수봉이 아저씨가 길을 내었다는 수봉로. 그리고 나타나는 진흙 길과 돌 길. 진흙만으로도 모자라 이제 돌이 모습을 드러낸다. 돌을 넘어 걸어야 한다. 자전거를 타고 올껄 이란 생각을 접은건 이때부터다.

작은 포구 마을도 지나가고 멋진 펜션도 지나친다. 그 중엔 대학생으로 추정되는 남녀 무리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노래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른다. 즐거운 시절이다.

아이폰이 이상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. 이때만 해도 설마 그 끔찍한 A/S를 경험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.

논길을 지나 백로도 보고 풍림 리조트의 그 유명한 그리고 고즈넉한 산책로도 거닐었다. 물론 아이폰은 점점 더 이상해져간다. 이 즈음에서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아이폰 4 때문에 비 맞고 계속 다닌건 절대 아니다. 정말이다.

해군기지 건립 문제로 어수선한 강정천을 지나간다. 한 쪽에선 천혜의 미항을 만들겠다는 공약을, 한 쪽에선 결사 항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다.
아이폰 사진은 더 이상 없다. 아이폰이 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. 계속 사진을 찍으며 다녔더니 배터리가 0%가 된 때문이기도 하다. 이후에 사진을 찍지 못한게 못내 아쉽지만 GPS 트랙킹 마저 했다면 이 보다도 더 빨리 닳았을 것인데 다행이라며 자위해 본다.
마지막엔 월평 마을에서 끝이 난다. 원래 1km 이전인 월평 포구가 끝인데 얼마전 연장됐다. 안그래도 멀고 힘든데 길이 연장된 것을 투덜댔지만 연장된 길이 절벽을 끼고 있는 밭 가장자리를 돌게 되어 있어 이 또한 가히 예술이다.
아무런 안전 장치 없는 절벽 가장자리를 작은 진흙 길에 의존하며 걷는 기분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. 이번 올레 7코스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.
월평 마을에 도착했다. 여기가 종착점이다.
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. 다시 서귀포시로 돌아가야지. 시내 버스를 타고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로 되돌아갔다. 걸어서 4시간을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죽을 고생하며 걸은 길은데 버스는 단 15분만에 되돌아갔다. 내 능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나. 이것 참 말로 표현하기 힘든 씁쓸함을 느낀다.
그렇게 올레 7코스는 끝이 났다.
4시간을 걷는 동안 다리도 아프고 날씨도 험하고 길도 엉망이었다.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끝까지 완주한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. 처음으로 걸어본 올레길, 황금 같은 주말을 투자해 걸었던 경험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.
또 다른 코스를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.
와이프를 언제 또 처갓집에 보낼까. 벌써부터 그 생각 중이다.
참고: 올레 7코스를 포함한 전체 코스는 KML/KMZ + Daum 지도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.



비오는 날 고생 많으셨습니다..
제주도 가보게 되면 저도 함 도전을~~
네, 추천합니다. 오셔서 꼭 한 번 걸어보시길 ^^
저는 6코스. (?)
트위터보고 놀러왔어요~^^
가을쯤에 올레길여행 계획하고 있는데~~
넘 부럽습니다!!